1장. 봉화와 깃발 — 신호로 말을 나르다

만화로 보는 요약 — 먼저 읽어보세요
불·깃발 같은 유한한 신호도 송신자와 수신자가 같은 약속표를 공유할 때만 뜻이 되며, 표가 다르면 신호는 멀쩡해도 의미가 깨진다.
면접 실전 질문: ① 인코딩의 세 요소는 무엇인가? ② 코드북이 어긋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③ 봉화와 컴퓨터 인코딩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배경 — 멀리, 빨리 전하고 싶다
인코딩 이야기를 컴퓨터에서 시작하면 뭔가를 놓칩니다. 글자를 원래 모습 그대로 보낼 수 없을 때, 사람은 어떻게 했나 — 이 질문이 인코딩의 진짜 출발점이거든요.
문제는 늘 똑같았어요. 소식을 멀리, 빨리 전해야 하는데, 목소리는 산 하나를 못 넘고 편지는 며칠이 걸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소리도 글자도 아닌 제3의 것으로 말을 날랐어요. 불, 연기, 깃발, 북소리 같은 것으로요. 이게 “글자를 다른 형태로 바꿔 나른다”는, 인코딩의 가장 오래된 조상입니다.
스토리 — 불과 깃발로 쓴 편지
가장 원초적인 건 봉화였습니다. 산봉우리에 불을 피우면 다음 봉우리가 받아 또 피우고, 그렇게 릴레이로 소식이 국경에서 수도까지 순식간에 달렸어요. 그런데 불은 그냥 “타오른다” 뿐이잖아요? 어떻게 뜻을 실었을까요. 미리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불 하나면 평화, 둘이면 적의 침입, 셋이면 전면전.” 불의 개수에 뜻을 미리 배정해 둔 거죠.
여기서 한 단계 올라간 게 깃발 신호입니다. 특히 18세기 말 프랑스의 클로드 샤프가 만든 광학 텔레그래프(팔 각도로 신호를 보내 흔히 세마포어라 통칭합니다)는 한 차원 달랐어요. 언덕마다 큰 팔이 달린 탑을 세우고, 팔의 각도 조합으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건 팔 모양 자체가 아니라, 통신원이 손에 쥔 번호 매긴 단어 책(코드북) 이었어요. 팔이 가리키는 번호를 그 책에서 찾아 단어로 옮긴 거죠. 이 방식으로 파리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까지 신호가 몇 분 만에 닿았습니다. 전기도 없던 시절의 “인터넷”이었어요. (telegraph는 그리스어 tele “멀리” + graphein “쓰다”, 즉 “멀리 쓰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배 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군은 색과 무늬가 다른 신호기를 조합해 “지금 항로를 바꾼다”, “위험” 같은 메시지를 주고받았어요. 깃발 한 장 한 장에 뜻이 정해져 있었죠.
이 셋의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불도, 깃발 각도도, 그 자체로는 아무 뜻이 없어요. “이 신호는 이 뜻이다”라는 약속표가 있어야 비로소 말이 됩니다. 그리고 보내는 쪽과 받는 쪽이 같은 약속표를 봐야만 통해요.
핵심 — 인코딩의 3요소가 여기 다 있다
봉화와 세마포어를 현대 용어로 번역하면, 놀랍게도 인코딩의 뼈대가 그대로 나옵니다.
- 유한한 신호. 불의 개수, 깃발의 각도처럼 쓸 수 있는 기호가 정해져 있다.
(나중에 컴퓨터에선 이게
0과1, 바이트가 됩니다.) - 약속표(코드북). “신호 → 뜻”을 미리 정해둔 표. 봉화 규칙, 세마포어 알파벳, 해군 신호기 책 — 전부 코드북이에요. 인코딩이 바로 이 표입니다.
- 송신·수신의 합의. 같은 표를 봐야 통한다. 표가 서로 다르면, 신호는 멀쩡히 도착해도 엉뚱하게 해석된다.
마지막 줄이 이 책 전체의 씨앗이에요. 봉화 셋을 “전면전”으로 약속한 쪽이, “축제”로
약속한 쪽에 신호를 보내면? 불은 정확히 세 번 피워졌는데 뜻은 정반대로 전해집니다.
신호는 안 깨졌는데 의미가 깨진 거죠. 여는 글에서 본 이력서의 ???, 그 모지바케의
원형이 바로 이겁니다. 같은 신호, 다른 약속표. 훗날 컴퓨터에서 벌어질 사고가,
이미 수천 년 전 봉화 시대에 예약돼 있었던 셈이에요.
코드로 보면 어이없을 만큼 단순합니다. 신호(숫자)는 똑같은데, 양쪽 약속표만 다르면 돼요.
signal = 3 # 봉화 세 번 — 신호 자체는 하나
sender = {1: "평화", 2: "침입", 3: "전면전"} # 보내는 쪽 약속표
receiver = {1: "평화", 2: "풍년", 3: "축제"} # 받는 쪽 약속표
print(sender[signal], "→", receiver[signal]) # 전면전 → 축제신호 3은 한 치도 안 틀리고 도착했는데, 뜻은 “전면전”에서 “축제”로 뒤집혔죠. 앞으로
이 책에서 만날 모든 깨진 글자가, 정확히 이 두 줄짜리 표의 어긋남입니다.
정리하면, 인코딩은 대단한 신기술이 아니라 **“기호에 뜻을 미리 약속해 둔 표”**입니다.
인류는 글자를 나르려고 수천 년째 이 표를 만들어 왔어요. 컴퓨터는 그 표를 0과 1로
옮겨 적었을 뿐이고요.
정리
- 인코딩의 원형은 컴퓨터가 아니라 봉화·깃발에 있다. 글자를 멀리 나르려고 다른 형태의 신호로 바꾼 것.
- 세 요소: ① 유한한 신호(불 개수·깃발 각도) ② 약속표(코드북)(신호→뜻) ③ 송신·수신의 합의(같은 표를 봐야 통함).
- 핵심 씨앗: 같은 신호라도 약속표가 다르면 뜻이 깨진다. 이게 모지바케(깨진 글자)의 근본 원리다.
생각해볼 질문: 봉화와 깃발은 사람 눈에 보이는 신호였어요. 그런데 19세기, 신호가 전선을 타고 전기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눈으로 못 보는 전기로 글자를 나르려면, 약속표는 어떻게 생겨야 할까요? 점 하나와 선 하나로 알파벳 전체를 쪼갠 사람 이야기로 갑니다.